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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가볼만한 곳 BEST 10

by carin79 2024. 7. 4.

경주

 대한민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약 천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습니다.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57년에 첫 성읍국가인 사로국이 경주 계림 일대에 세워졌는데, 그로부터 불과 50년 전인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의 왕검성이 함락되었으니 경주시는 도시 전체가 고풍스럽고 역사적인 무대라 할 수 있습니다.

경주 가볼 만한 곳 BEST 10

1. 국립 경주 박물관

 역사문화의 도시 경주 여행에 앞서 공부하고 가기 딱 좋은 곳이 신라문화 유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입니다. 교과서에서 본 그 금관, 천년동안 땅에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영롱한 자태의 그 금관을 생눈으로 마주할 수 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대표전시관인 신라역사관을 비롯해 신라미술관, 월지관 등의 상설전시관 3관과 기획전시가 열리는 특별전시관이 있습니다. 신라역사관에는 신라의 건국부터 멸망까지 일련의 역사를 4실로 나누어 전시했습니다. 신라의 문화를 논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불교와 미술’에 대한 전시콘텐츠는 신라미술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월지관은 동궁과 월지를 테마로 한 전시관입니다. 동궁과 월지 복원모형을 비롯해 월지에서 출토된 나무배, 금동판삼존불좌상과 같은 귀한 유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상설전시관 세 곳에서는 정해진 시간마다 전시해설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니 박물관 관람 전 시간표를 확인하고 해설을 들으며 전시관 관람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야외 전시장에는 에밀레종으로도 불리는 성덕대왕신종과 웅장함이 돋보이는 고선사지 3층석탑 등 국보급 유물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름은 어린이를 위한 곳 같으나 남녀노소 누구나 신라역사를 배우며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어린이박물관 역시 인기 있는 장소입니다. ‘화랑이 되다’, ‘왕을 만나다’, ‘부처님의 나라를 꿈꾸다’, ‘세계로 무대를 넓히다’, ‘신라에 꽃핀 예술과 과학’ 등 5개 존으로 최신 전시기법을 활용해 콘텐츠가 꾸려져 있습니다.

 

위치 :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관람시간 : 10:00-18:00(토-일 19:00까지)
              3월-11월 매주 토요일 및 매월 마지막 수요일 10:00- 21:00
휴관일 : 1월 1일, 설날, 추석당일
관람료 : 무료

2. 첨성대

 천 오백년을 한 자리에서 우리는 책에서나 봤을 역사 속 온갖 사건을 직접 보았을 터인 첨성대는 처음 지어진 그때의 모습 그대로 한 자리에 서 있습니다. 신라의 역사가 이루어진 그곳에서 말입니다. 모양은 또 어찌나 독특한 지 경주 기념품 중 첨성대 모양 물건 하나 안 산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경주의 랜드마크라 칭할 법 한 장소입니다.
 그 독특한 모양새는 연구가들의 의욕에 불을 지폈습니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한 용도였다던가, 단순히 상징적인 탑이었다던가 하는 여러 설들이 나왔지만, 하늘을 관측하기 위한 천문대라는 가장 지배적인 견해를 뒤엎지는 못했습니다.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 첨성대는 알면 알수록 과학적인 석축물입니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진 첨성대의 모양은 하늘과 땅을 형상화했습니다. 첨성대를 만든 365개 내외의 돌은 1년의 날수를 상징하고, 27단의 돌단은 첨성대를 지은 27대 선덕여왕을, 꼭대기 정자석까지 합치면 29단과 30단이 되는 것은 음력 한 달의 날수를 상징합니다. 관측자가 드나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위쪽 12단과 아래쪽 12단은 1년 12달, 24 절기를 표시합니다. 놀라운 과학적 사실이기도 하며, 첨성대가 하늘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말해주는 증거들이기도 합니다. 

위치 :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관람시간 : 09:00-22:00(11월-2월 21:00까지)
관람료 : 무료

 

3. 대릉원

 대릉원을 둘러보는 여행자들은 저마다의 목적이 있습니다. 고분 내부를 볼 수 있다는 천마총으로 직행하는 사람, 경주에서 가장 큰 무덤 황남대총을 보러 가는 사람, ‘대체 거기가 어디야?’를 되뇌며 고분 사이의 청초한 목련나무 한 그루 앞에서 인증샷 남기려는 사람, 이 왕릉은 이렇네, 저 고분은 저렇네, 살피며 탐방로 따라서 유유자적 산책하는 사람등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방문합니다.

 경주 시가지인 황남동에 자리한 대릉원은 약 12만 6,500㎡의 넓은 땅에 23기의 신라시대 고분이 모여 있는 고분공원입니다. 그 중 주목해서 보아야 할 고분은 황남대총과 천마총, 그리고 미추왕릉입니다.

 신라 초기, 이서국에서 신라를 침입했을 때 머리에 댓잎(대나무잎)을 꽂은 군사들이 몰려와 그들을 물리쳤는데 군사들에게 꽂혀 있던 댓잎이 미추왕의 무덤 앞에 소복이 쌓여 있었습니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미추왕의 염원이었을까, 사람들은 그 후 미추왕릉을 별칭으로 ‘죽장릉’이라 불렀습니다. 댓잎군사 설화가 전하는 미추왕릉은 봄의 벚꽃놀이 명소로도 유명합니다.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잠든 미추왕을 호위하듯 서 있습니다.

 경주 사람들은 대릉원을 천마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대릉원을 대표하는 고분이 이 천마총입니다. 1973년 거대한 고분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위해 연습 삼아 바로 옆의 고분 하나를 골라 파기 시작했는데, 뜻하지 않게 귀한 유물이 나왔습니다. 옥황상제가 하늘에서 타고 다닌다는 그 말이 지상에 내려온 듯 상서로워 보이면서도 경쾌한 천마의 그림인 말다래에 그려져 있던 ‘천마도’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제155호 고분은 ‘천마총’이란 이름을 가졌고, 고분 내부를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덤이 되었습니다.

 천마총 발굴의 수확에 고무된 학자들은 황남동에서 가장 큰 고분 ‘제98호 고분’, 황남대총 발굴에 돌입했습니다. 2년여 간 3만 명이 넘는 인원이 투입된 대대적인 발굴조사였습니다. 황남대총은 두 개의 고분이 쌍봉낙타의 등처럼 남북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규모답게 남쪽과 북쪽 두 고분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은 5만 7천여 점에 달했습니다. 북쪽 무덤에서는 금관을 비롯한 ‘부인대’라는 여자 허리띠와 목걸이, 팔찌 등의 장신구가 나왔고, 남쪽 무덤에서는 남자의 뼈와 금동관과 무기 위주의 유물이 발견되어 남녀의 무덤, 나아가 부부의 무덤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위치 : 경북 경주시 황남동 일원
관람시간 : 09:00-22:00(입장 마감 21:30)
관람료 : 어른 3,000 / 청소년, 군인 2,000 / 어린이 1,000

 

4. 동궁과 월지

 동궁과 월지를 찾아야 하는 시간은 이견 없이 저녁입니다. 해 넘어가는 시간이 이리도 길었던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며 지루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려는 즈음 임해전을 비롯한 복원 건물에 조명이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는 한 순간도 동궁과 월지의 풍경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매 분, 매 초 오만가지 저녁의 색깔이 동궁과 월지를 수놓습니다. 옅은 귤색이었다가, 핏빛 붉은색으로, 오묘한 자줏빛으로, 그리고 이내 밤의 색깔로 돌아서는 그 풍경을 놓칠 수가 없습니다.

 경주야경 제 1의 명소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이곳 동궁과 월지는 ‘안압지’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폐허가 된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 무리가 있는 연못이라 하여 ‘안압지’라 불렀는데, 원래 이곳은 신라시대 왕자들이 기거하던 별궁이 있던 자리입니다. 그래서 2011년 ‘동궁과 월지’라는 제 이름을 찾았습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문무왕 14년(674)에 연못인 ‘월지’가 조성되었고, 삼국통일이 완성된 이후인 679년에 ‘동궁’이 지어졌다고 전해집니다.

 신라 왕자의 거처가 있었고, 동궁 내의 ‘임해전’은 연희, 회의, 접대 장소로 활용되었습니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 조경예술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동서 길이 200m, 남북 길이 180m인 월지는 남서쪽의 둘레는 직선인데 반해 북동쪽은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못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없어 끝을 알 수 없는 바다와 같은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연희장소로 쓰인 ‘임해전(臨海殿)’의 뜻이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각이라는 뜻이라 바다처럼 보이게 조성한 연못 월지에 힘이 실립니다.

위치 : 경북 경주시 원화로 102
관람시간 : 09:00-22:00(입장 마감 21:30)

관람료 : 어른 3,000 / 청소년, 군인 2,000 / 어린이 1,000

 

5. 보문관광단지

 보문 관광단지에서만 1박2일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볼거리, 즐길 거리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보문관광단지는 넓은 면적에 레저, 관광시설이 산재해 있어 자동차, 자전거를 이용해 여행할 것을 추천합니다. 대중교통 인프라도 좋으니 버스를 이용해 여행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코스 중에서 호반길 산책을 필수로 넣어 도보여행을 즐기는 것도 추천합니다. 시내권 여행지가 자동차로 15-20분 거리에 있으니 제안 코스에 시내권 여행지를 몇 곳 추가하면 최고의 여행일정을 계획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불국사

 불국사는 지난 1995년 석굴암, 서울의 종묘,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경주여행을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경주에 와서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고 가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경주, 아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걸출한 문화유산입니다. 불교를 나라 신앙으로 믿었던 신라인들은 그들이 해낼 수 있는 최고의 건축 기법과, 최고의 노력과, 최고의 정성으로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를 건설했습니다. 불교교리를 사찰 건축물에 잘 녹여내 이상적인 가람 배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목조건축에서 쓰인다는 ‘그랭이 기법’으로 잘 짜여진 가구식 석축(보물 제1745호)이 부처님의 나라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석축 위에 범영루라는 누각이 있는데 불교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수미산 정상을 의미합니다. 이 천상의 세계로 오르는 계단이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입니다. 청운교와 백운교를 올라 자하문을 지나면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대웅전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양 쪽에 대웅전을 호위하듯 선 다보탑(국보 제20호), 석가탑(국보 제21호)과 함께. 대웅전 서편에는 서방 극락정토의 영역, 극락전이 있습니다. 극락전 영역으로 오르는 계단은 청운교 백운교와 함께 국보로 지정된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호)입니다. 이 다리를 올라 극락세계의 정문인 안양문을 지나면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을 모신 극락전과 만나게 되는 구조입니다.

 

7. 석굴암

 불국사와 함께 지난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우리나라 최초로 등재되었습니다. 삼국유사에 불국사와 석굴암 창건에 관련한 설화가 전하는데, 인생을 두 번 살았던 기구한 운명의 사내 김대성이 장차 신라의 재상이 되어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석굴암)를 지었다고 합니다.
석굴암은 석굴사원입니다. 석굴암 이전에도 석굴사원은 있었지만 대부분 작은 자연 석굴을 이용하거나 바위를 깎아 굴을 만들었는데, 석굴암은 부처를 모시기 위해 치밀한 설계로 건축한 인공석굴입니다. 천장 돔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밸런스를 맞출 수 있도록 돔을 이루는 돌 사이사이에 돌못을 수평으로 끼워 넣어 무게 균형과 안정감을 해결했습니다.

 탄탄한 인공돔 아래의 원실(주실)에는 신라 불교미술의 정수를 온 몸으로 보여주는 본존불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웅장한 규모이지만 한없이 자애롭고 온화한 표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본존불 바로 뒷면에는 세밀한 조각이 돋보이는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있고 돔 둘레에 작은 감 실을 만들어 10개의 불상을 모셨습니다. 가장 앞줄의 좌우 불상은 도굴꾼들에 의해 사라지고 8개의 불상만이 남아 있습니다. 감실 아래 둘레에는 앞쪽에 천부상과 보살상 4기, 뒤쪽에는 십 대 제자상이 새겨져 있다. 각기 다른 표정과 자세를 하고 있어 생동감이 넘칩니다.
석굴암은 원실(주실)앞에 사각형의 전실이 붙어 있는 구조입니다. 전실과 원실(주실)을 연결하는 통로에 사천왕상 4기가 있고 전실에는 역동적인 금강역사 2기와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신 팔부신중이 새겨져 있습니다. 

 

8. 황룡사지구

 경주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리웁니다. 귀한 문화유산들이 전역에 산재해 있습니다. 이것을 증명하듯 지난 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경주 시가지, 남산을 아우르는 영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시내권 유적인 월성지구, 황룡사지구, 대릉원지구와 보문관광단지 인근의 산성(명활산성) 지구, 시가지 남쪽의 남산지구 등 5개의 지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 5개 지구는 탑, 절터, 궁궐터, 왕릉, 불상, 산성을 비롯한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수많은 문화유적을 품고 있습니다.

 황룡사의 절터도 분황사 바로 옆에 있습니다. 진흥왕 때부터 시작해 선덕여왕까지 거의 한 세기에 걸쳐 건립된 동양 최대의 사찰이었습니다. 거대한 삼존불상을 모셨던 금당, 아파트 25층 높이(82m)에 달하는 황룡사9층목탑이 위용을 뽐냈습니다. 고려시대 몽골군에 의해 불타 없어져 현재는 광활한 대지에 건물터와 주춧돌 일부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황룡사지와 함께 황룡사역사문화관을 함께 둘러보면 당시의 황룡사의 웅장한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황룡사지의 발굴조사와 복원 추진과정을 국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지난 2016년 11월 문을 열었습니다. 황룡사 건립부터 소실까지의 과정을 담은 3D영상 시청각실과, 발굴조사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신라역사전시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1층에는 황룡사 9층목탑을 1/10 크기로 재현한 모형탑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9. 석빙고

 경주최부자댁과 경주향교가 있는 교촌한옥마을을 벗어나 걸어서 5-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월성으로 향하면 조선시대의 냉장고를 보러 가는 길입니다. 보물 제66호로 지정된 경주석빙고는 월성 안의 북쪽 성루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천여 개의 돌로 만들어진 얼음 창고로, 석실은 직사각형이고 천장은 돔 형태로 올려져있으며 출입문은 남쪽에 있습니다. 천장에는 공기구멍이 셋 있고, 바닥은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홈을 파고 경사를 만들었습니다.
 석빙고 출입문 이맛돌에 ‘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재신유(再辛酉) 추팔월(秋八月) 이기(移基), 개축(改築)’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영조 17년(1741)에 옮겨 세웠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입문이 닫혀 있어 내부로 들어가 보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문 바깥에서만 석실 내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니 서늘한 한기가 느껴져 선조들의 지혜에 새삼 감탄이 나옵니다.

 

10. 문무대왕릉

 한국 미술사학계의 대부 故고유섭 선생은 수필 ‘경주 기행의 일절’에서 경주에 간다면 문무대왕릉을 꼭 찾으라 했습니다. 아버지 무열왕이 다져놓은 기반 위에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한 제30대 문무왕은 큰 뜻을 이뤘지만 그는 죽는 날까지 나라를 걱정했습니다. 문무왕은 자신을 화장하여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나라를 평안하게 지키겠노라 유언했습니다. 그 뜻을 받들어 문무왕의 유해를 육지(능지탑지로 추정)에서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에 뿌렸습니다. 양남면 봉길해변에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습니다. 문무대왕릉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들었습니다. 위에서 대왕암을 내려다보면 동서남북으로 물길을 만들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길은 대왕암 안쪽을 항상 잔잔하게 유지해 주는 장치입니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모양의 돌이 덮여 있는데 이 아래에 문무왕이 잠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동해의 용이 되어 있을 문무왕을 그리며 봉길해변에 가만히 서서 능을 바라보면 벅차오르는 마음, 평화로워지는 마음이 공존하는 유다른 기분이 듭니다.